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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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곽원갑

곽원갑은 1868년부터 1910년까지 중국에 실존했던 무도인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무예인 곽가권을 익힌 그는 "나라가 강해지려면 국민들이 무술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 각기 흩어져 있던 무예 파벌을 규합해 정무체조회를 만든다. 이를 고깝게 여긴 일본의 무술인 10명이 찾아와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곽원갑에게 패한다. 여기 앙심을 품은 일본인들은 그를 대접한다는 명분으로 독을 탄 음식을 먹여 독살한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우인태 감독이 만든 '무인 곽원갑'(Fearless, 2006년)은 실존인물인 곽원갑을 주인공으로 만든 무협영화지만 사실과 많은 부분이 다르다. 주인공 이름과 몇 가지 사실만 빌려왔을 뿐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초반과 막판 대결 등은 모두 만든 이야기다. 하지만 역사 영화가 아닌 만큼 ..

싸움의 기술

신한솔 감독의 '싸움의 기술'(2006년)은 배우 백윤식의 만만치 않은 연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독서실에 은둔중인 싸움의 고수 오판수 역을 맡아 특유의 가라앉는 음성과 묵직한 연기로 독특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슬며시 배어나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는 학교에서 불량배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고등학생이 싸움의 고수를 만나 실전 기술을 배우면서 불량배들을 물리친다는 다소 무협지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얼핏 보면 요란한 액션활극 같지만 실제로 액션은 많이 나오지 않고 나약한 학생이 강해지기까지 겪게되는 갈등과 공포 등 심리 묘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당연히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늘어질 수 밖에 없는 점이 영화의 약점이다. 반면 영화를 느긋하게 즐길 자세가 되었다면 '하이눈' 등..

무극

첸 카이거 감독의 '무극'(The Promise, 2005년)은 참으로 망극지통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동양식 판타지를 표방한 이 작품은 시대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국가에서 운명으로 얽힌 4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대결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경극에 나올법한 중국식 갑옷과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 시대와 역사성, 지역성을 상실한 채 표류한다. 볼거리도 마찬가지다. 황당한 만화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은 실사 촬영과 이질감이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어색하고 치졸하다. 액션 또한 '와호장룡'의 시원한 와이어 액션, '영웅'과 '연인'에서 본 호쾌한 결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단조롭다. 오히려 3류 무협영화만도 못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동건,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 등 한,..

음란서생 (한정판)

김대우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음란서생'(2006년)은 참으로 재치있는 작품이다. 야설, 동영상, 댓글 등 현대적인 요소들을 사극에 절묘하게 대입한 솜씨가 일품이다. 무엇보다 김탁환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정교하게 구성한 드라마가 돋보인다. 또 감칠맛나는 대사도 매력적이다. 꽤나 문학적으로 표현한 대사들을 보면 김 감독은 소설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사대부 집안의 관리가 우연히 음란소설을 접하면서 졸지에 야설 작가로 변신하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 관리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왕의 여인인 후궁과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전개된다. 어찌보면 감독은 음란이라는 주제를 통해 금기시된 모든 것들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기도 하다. 과거나 지금이나 버젓이 드러낼 수 없는 음란..

게이샤의 추억

몇 년 전 교토를 갔을 때였다. 현지 가이드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전통적인 게이샤 집을 안내했다. 일행들은 커다란 다다미방에서 작은 상을 각각 앞에 놓고 앉아서 기다렸다. 잠시후 아주 어려서부터 전수 교육을 받은 게이샤들이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들어왔다. 중국 경극분장처럼 얼굴을 하얗게 화장한 게이샤들이 각각 상 앞에 마주 앉아서 저녁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민망하게도, 우리 앞에 나타난 게이샤들은 영화나 책에서 보고 읽은 아리따운 여성들이 아니었다. 거의 어머니뻘은 될 만한 아주 나이가 많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술을 따라주는게 미안해서 받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렇게 수발을 들던 게이샤들은 잠시 후 샤미센이라는 기타 비슷한 일본의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