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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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정석

가끔 이 작품은 왜 만들었을까 싶은 영화들이 있다.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으며 눈요기감 조차 되지 못하는 영화들이다. 민망하게도 오기환 감독의 '작업의 정석'(2005년)이 그런 작품이다. 소위 '선수'로 통하는 남,녀 연예전문가 두 사람이 만나서 겪게 되는 일을 다룬 이 영화는 억지 웃음과 과장된 캐릭터로 일관해 감상 시간을 아깝게 만든다. 잘 만든 시트콤만도 못한 이 작품이 '안녕 프란체스카'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워낙 작품의 내용이 막무가내식이다보니 손예진과 송일국의 변신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은 평범한 화질이다. 일부 장면에서 잡티와 스크래치가 보이고 샤프니스도 높지 않다. DTS를 지원하는..

야수 (감독판)

'야수'(2005년)의 감독판 DVD는 극장 개봉시 삭제된 20여분 가량이 추가됐다. 덕분에 이야기가 한결 윤택해지고 장면 전환이 매끄럽다. 극장판의 경우, 장면 전개가 지나치게 건너뛰는 부분이 많아서 비약이 심하다보니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감정과잉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감독판은 충분한 설명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둘러싼 전후맥락이 분명하게 이해된다. 신인감독 김성수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같은 두 남자의 처절한 인생사를 다루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악당에 맞서는 형사와 검사의 처절한 싸움은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끌리는 작품은 아니다. 이야기의 흡입력도 떨어지고 메시지 부각을 위해 홍콩 느와르처럼 내용을 과장하다보니 ..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천국의 문(슈퍼비트)

'카우보이 비밥'은 참 묘한 작품이다. 적당히 유머러스하며 적당히 폭력적이고, 적당히 나른하다. 마치 명랑만화와 액션만화, 여기에 록비트 음악이 섞인 꼴이다. 어찌보면 느와르같고, 어찌보면 '블레이드 런너'처럼 세기말의 허무함을 담은 SF같은 이 작품은 사실 이 모든 장르의 매력만 따서 모은 퓨전 애니메이션이다. 처음 TV시리즈를 봤을 때에는 '루팡 3세'를 연상케 하는 쿨한 그림에 빠졌고, 두 번째 DVD로 다시 봤을 때에는 칸노 요코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다양한 음악에 반했고, 세 번째 봤을 때는 내용에 빨려들었다. 그만큼 여러 번 되풀이해봐도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이 만든 극장판 장편인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또한 기대가 컸다. 여전히 훌륭한 그림과 ..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기타노 다케시 컬렉션 중에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 가운데 처음보고 홀딱 반해버린 작품이 바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2년)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년이 파도타기에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일화를 다룬 이 작품은 서정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이 한 편의 시화처럼 어우러졌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 작품 가운데 그가 출연하지 않으며 깡패와 폭력 장면이 전혀 없는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일상 속의 소소한 유머와 허무주의는 변함이 없다. 생의 목표와 사랑을 바다가 집어삼켜도 세상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치 스크린 뒤에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특유의 냉소를 띄고 바라보는 듯 하다. 이번에 11장의 디스크로 구성돼 출시된 기타노 다케..

사이드웨이 (SE)

인생은 와인같다. 희노애락이 녹아든 인생은 영락없이 달콤 새콤하면서 쓴 맛이 어우러진 와인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사이드웨이'(Sideways, 2004년)에서 그린 인생은 그중에서도 오래 숙성된 와인같은 중년의 삶이다. 아내와 이혼하고 우울증을 앓는 남자와 결혼을 앞둔 그의 오랜 친구가 와인 농장을 찾아 총각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일화들은 다품종의 와인 진열장을 보는 것 같다. 와인 농장이 무대인 만큼 와인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와인에 관심이 높다면 흥미로울 작품이다. 반면 갖가지 상황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심리묘사에 초점을 맞춰 농익은 대사로 줄거리를 풀어가다보니 호흡이 빠른 할리우드 액션물에 익숙하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