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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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의 권 (무삭제판)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말, 동생이 비디오테이프를 하나 가져왔다. 소위 'B'자로 불리던 불법복사한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우리말 자막이 없어 무슨 소리인지 못알아들으면서도 충격적인 내용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작품이 바로 아시다 토요오 감독이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 '북두의 권-세기말구세주전설'(1986년)이었다. 브론슨이 글을 쓰고 하라 테츠오가 그림을 그린 이 작품은 아주 잔혹하다. 주인공 켄시로가 구사하는 무술은 인체의 내장을 파괴하는 북두신권이어서 두들겨맞은 악당들은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폭발하거나 관절마다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죽어간다. 애니메이션에서 어떻게 저렇게 잔혹한 묘사를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워낙 이미지가 강렬해 끝까지 보게 된다. 수십 권이 넘는 원작 만화에 비해 극장..

나의 결혼원정기

황병국 감독의 데뷔작 '나의 결혼원정기'(2005년)를 처음 본 곳은 3월에 출장차 탔던 유럽행 비행기였다. 몇 가지 영화를 보기 위해 좌석에 연결된 AV시스템의 채널을 돌리던 중 이 작품을 하길래 우연히 보게 됐다. 아무 생각없이 봤지만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다. 마흔이 가깝도록 결혼을 못한 시골 노총각들이 할 수 없이 머나먼 우즈베키스탄까지 가서 신부를 찾는 얘기를 코믹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그렸다. 농촌 총각들이 여자들의 결혼 기피상대가 돼버려 우즈벡, 필리핀, 베트남 등으로 결혼원정을 떠나는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을 제대로 짚은 메시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작품의 리얼리티, 즉 현실감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배우들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고, 실화를 토대로 감행한 ..

레전드 오브 조로

돌아온 '조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마틴 캠벨 감독이 만든 '레전드 오브 조로'(The Legend of Zorro, 2005년)는 졸지에 스파이물에 로맨스 코미디, 가족 영화가 뒤섞인 '스파이키드'다. 전작에서 춤과 칼솜씨로 매력을 뿜어낸 캐서린 제타 존스는 바가지나 긁는 아줌마가 돼버렸고, 난데없이 귀여운 꼬마가 가세해 어린 조로 흉내를 낸다. 여기에 '다빈치 코드' 이후 조류처럼 돼버린 이단 단체까지 등장해 미국을 사악한 권력의 손에 넘기려는 음모를 펼친다. 이쯤되면 조로는 더 이상 서민을 대신해 악당을 응징하는 홍길동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는 수퍼맨같은 존재가 돼버린다. 그만큼 과장된 이야기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액션도 요란하기는 하지만 전작만 못한 느낌이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

투사부일체

차라리 이런 식의 속편이라면 만들지 않는게 낫다. 김동원 감독의 데뷔작인 '투사부일체'(2006년)는 전편에서 대사와 인물만 갈아끼운 억지 코미디다. 대사를 비롯해 상황, 설정이 전편과 너무나 흡사하다. 학생으로 돌아가 학교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대두목, 학교 여선생과 정웅인의 로맨스, 생활고 때문에 엇나가는 여고생, 학교 재단의 전횡이 빚어지는 사립고, 룸살롱 씬 등 대부분이 전편의 판박이다. 전편은 터지는 폭소와 더불어 추락한 교권과 사립고의 문제점을 지적한 메시지가 확실했는데 이번 작품은 온통 억지웃음 뿐이다. 우선 교생이 된 계두식의 반에 보스가 학생으로 배속된 점부터 시작해 고교생들 때문에 싸우던 깡패들이 인사하고 물러가는 설정까지 자연스런 것이 거의 없다. 그저 얄팍한 인터넷 유머와 슬랩..

미션 임파서블 3

J.J 에이브람스 감독의 '미션 임파서블 3'(Mission Impossible 3, 2006년)는 톰 크루즈와 블록버스터 이름값을 하는 작품이다. 1, 2편 못지않은 액션과 볼거리,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상영 시간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전작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2편이 오우삼 감독의 영향으로 요란한 액션에 치중했다면 3편은 1편처럼 아슬아슬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사건이 해결되는 듯 싶으면 또다른 복선과 반전으로 시종일관 가슴 졸이며 영화를 보게 만든다. 그만큼 영화를 끌어가는 스토리텔링이 잘 된 작품이다. 전작들처럼 미션 임파서블 특유의 코드 요소는 변함없이 등장한다. 감쪽같은 변장과 음성변조, 줄에 매달린 곡예 같은 침투와 탈주 등은 어느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특징이 돼..

영화 2006.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