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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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은 '성스러운 피'를 만든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나 '집시의 시간'을 만든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을 좋아했다. 이유는 "영화란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작품은 보편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더없이 낯설고 기이하다. 그의 12번째 작품 '활'도 마찬가지다. 바다 위에 폐선처럼 떠있는 배 위에서 생활하는 노인과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두 사람에 대한 일체의 설명 없이 그들의 생활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들에게는 활이 유일한 오락기구요, 악기이자 무기요, 생활의 수단이 된다. 김 감독이 활을 주요 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 시위처럼 팽팽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나타내듯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기 전에 "팽팽..

극장전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매사에 시큰둥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나온다.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오 수정' 등 그의 작품들을 보면 배우들은 느닷없이 화를 내고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 이를 보는 관객들은 당황스럽다. 배우들의 엉뚱한 모습이 마치 관객에게 도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홍 감독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를 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를 영화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의 6번째 작품 '극장전'(2005년)도 마찬가지다. 엉뚱한 인물들의 대화와 상황이 빚어내는 당혹감은 전작들과 마찬가지지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만큼 유머러스하지 않다. 더 이상 놀랍거나 신기..

어썰트 13

장 프랑소와 리세(Jean-Francois Richet) 감독의 '어썰트 13'(Assault On Precinct 13, 2005년)은 '트레이닝데이'이후 오랜만에 에단 호크(Ethan Hawke)의 숨 가쁜 액션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이하드'처럼 요란하거나 긴장감 넘치지는 않지만 킬링타임용으로 충분한 액션물. 원작은 1976년 개봉한 존 카펜터(John Carpenter) 감독의 '분노의 13번가'. 카펜터 감독이 서부극 '리오 브라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이 작품을 '네고시에이터'의 대본을 쓴 제임스 드 모나코가 각색했다. 고립된 경찰서에 갇힌 소수의 경찰관들이 자신들을 포위한 악당들과 대결을 벌이는 내용은 원작과 똑같지만 범죄자들과 손을 잡고 부패 경찰들과 싸운다는 설정이 다르다. 초반과..

황정민-"Honeyed Question" (영화 '달콤한 인생' OST)

"이 노래는 어떻게 부르게 됐죠?" "음악감독들하고 술 먹다가 하게 됐어요. 아마 술 김에 그래, 그래, 그랬을 거야."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 출연한 배우 황정민은 노래를 부른 이유를 술 탓으로 돌렸다. 몹시 쑥스럽다는 듯. 그런데 노래를 들어보면 쑥스러워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워낙 맛깔스럽게 불렀으니까. 그가 부른 'Honeyed Question'은 정작 영화에서는 들을 수 없다. 별도로 발매된 '달콤한 인생' OST 음반에만 수록돼 있으며 DVD 타이틀의 2번째 부록 디스크에 들어 있다. 영화 속에서 더없이 비열한 악당 백사장을 너무도 훌륭하게 연기한 황정민은 쓸쓸한 목소리로 누아르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멋지게 불렀다. 오히려 양파가 부른 주제가보다 이 곡이 더 좋다. 라틴풍 ..

댄서의 순정

박영훈 감독의 '댄서의 순정'(2005년)은 두 번 놀라게 만든 작품이다. 하나는 214만 명의 관객이 들어 '말아톤', '마파도' 등과 함께 상반기 빅 히트작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토록 엉성한 내용의 영화가 히트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문근영의 힘 때문이라는 게 대세였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곳곳에 '어린 신부'의 이미지가 중첩됐다. 줄거리보다 문근영의 스타성에 초점을 맞춰 그림을 예쁘게 나오도록 만들기 위해 신경을 쓴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하나는 박영훈 감독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는 두 번째 작품 '댄서의 순정'을 만들기 전에 이병헌, 이미연이 나온 '중독'으로 데뷔했다. '중독'은 일본 영화 '비밀'과 비슷한 소재 때문에 논란이 많았지만 이야기 전개가 '비밀'보다 한 수 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