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전체 글 2635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코엔 형제는 그동안 작품들로 미뤄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냉소적이다. '파고' '레이디킬러' '밀러스 크로싱'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등 여러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죽을 고생을 하고, 아니 심지어 죽기까지 하면서도 늘 빈 손이다. 세상이 이들의 작품 같다면 참 살기 힘들 것 같다. 어찌 보면 머리 굴리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는 얘기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선량한 사람들마저 골탕 먹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조엘 코엔(Joel Coen)이 감독하고 에단 코엔(Ethan Coen)이 함께 각본을 쓰고 제작한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The Man Who Wasn't There, 2001년)도 마찬가지. 촌마을 이발사(빌리 밥 손튼 Billy Bob Thornton)가 어느 날 손님에..

빈 집

'빈 집'(2004년)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치고 퍽이나 얌전하다. 우선 피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잔혹하거나 가학적 장면도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섬'이나 '나쁜 남자'처럼 김기덕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영상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도 예전 작품들처럼 범상치 않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 태석(재희)은 빈 집만 골라다니며 마치 자기 집처럼 숙식을 하고 빨래까지 해주는 특이한 인물이다.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는 여자 선화(이승연)도 그를 따라다니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로 흔치 않은 캐릭터다. 이처럼 독특한 인물이 만나서 한 집에 유령처럼 동거를 하는 내용은 판타지에 가깝다. 현실을 다루면서도 결코 현실 같지 않은 기이한 느낌을 주는 점이 김기덕의 ..

달콤한 인생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감독의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1960년)은 참으로 역설적 제목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마르첼로의 모습을 통해 과연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신문기자 마르첼로(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Marcello Mastroianni)의 눈에 비친 1960년대 로마는 화려한 외관 속에 안으로 혼돈과 정체성의 상실을 감추고 있는 부조리한 사회다. 그 속에서 마르첼로는 상류 사회의 향락에 젖어들지만 친구의 자살과 애인의 자살 시도 등을 겪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갈등하게 된다. 배우들의 상상력을 잠식한다는 이유로 대본을 주지 않기로 유명했던 펠리니 감독답게 이 작품 역시 이야기 흐름이 편안하거나 친절하지 않..

엑소시스트 (The Version You've Never Seen)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 감독의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년)는 공포 영화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액션에 비중을 둔 요즘 공포 영화와 달리 이 작품은 상징, 징조 등으로 무서움을 자극하는 정통 공포물의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따라서 보는 내내 으스스한 분위기로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특히나 이 작품이 무서운 것은 실화에 바탕을 뒀기 때문. 원작자인 윌리엄 블래티는 1940년대 후반 위싱턴 D.C 근교의 마운트 래니어 마을에서 악령에 사로잡힌 14세 소년을 구해낸 신부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1971년 소설로 발표했다. 그는 소설이 인기를 끌자 제작자로 나서 프리드킨 감독을 지목해 영화로 만들었다. 워낙 충격적인 소재인 만큼 영화는 개봉 ..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루이스 길버트(Lewis Gilbert) 감독이 연출한 007 시리즈 10번째 작품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1977년)는 로저 무어(Roger Moore)가 나온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재미있다. 사실상 전편에 이어 이 작품마저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로저 무어가 도중 하차했을 수 있다. 다행히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용은 바다속 비밀기지에 사는 악당이 전세계를 물바다로 만들려고 미국과 소련의 핵잠수함을 탈취하고 이를 되찾는 007의 활약을 그렸다.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는 칼리 사이몬이 불렀다. 사실 이 작품의 성공은 엄밀히 얘기하면 악당 덕이다. 이 작품에는 007 시리즈를 통 털어서 가장 인상깊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