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4/05 15

허니와 클로버 (블루레이)

우미노 치카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한 타카다 마사히로 감독의 '허니와 클로버'(2006년)는 미대생들의 사랑과 우정을 담은 영화다. 하지만 10권에 이르는 원작 만화를 2시간에 압축하다보니 이야기가 촘촘하지 못하고 성기다. 인물들의 감정 기복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이야기 쫓아가기에 급급하다보니 공감하기 힘든 작품이 돼버렸다. 원작 만화를 읽고 본다면 어느 정도 인물들에 녹아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징검다리를 건너듯 성큼성큼 진행되는 이야기가 마냥 지루할 수 있다. 특히 남녀간에 얽히고 설키는 감정선의 묘사는 마치 1970년대 영화를 보는 것 처럼 늘어진다. 뻔히 전개의 양상이 보이는 데도 답답한 대사와 영상으로 일관한 것은 연출력의 한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나마 칸노 요코의 음악과 ..

열혈남아 (블루레이)

어떤 판본을 먼저 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 대학 시절에 처음 본 왕가위 감독의 걸작 '열혈남아'(1987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열혈남아-골든-콜렉션)는 왕걸과 엽환의 노래 '汝是我胸口永遠的通'(너를 보낸 내 가슴은 아프고)로 기억한다. 유덕화가 장만옥의 팔을 낚아 채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든 뒤, 하얗게 부서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열렬하게 키스를 나눌 때 흘러 나오던 이 노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왕걸의 CD를 듣다가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가슴이 뛰며 아련함이 밀려 온다. 그만큼 왕걸과 엽환의 노래는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의 장면들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따라서 두 사람의 노래가 없는 '열혈남아'는 상상할 수도 없고, 극단..

터키 시데

터키의 해안 도시인 시데는 자동차로 안탈리아에서 1시간 20분, 폭포가 있는 마나브가트에서는 20~30분 가량 걸린다. 이 곳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닷가에 우뚝 서있는 새하얀 로마시대 신전이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고대 유적지다. 안탈리아 일대에 들어서 있던 팜필리아의 항구도시로 발전한 시대는 시데탄이라는 독자 언어를 썼다. 이 언어는 청동기시대에 터키 남서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사용한 루비아어로 발전했다. 시데는 바로 루비아어로 석류라는 뜻이다. 그만큼 시데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카타이오스는 시데를 황소의 신 타우로스의 딸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기원전 540년경, 이 지역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항복해 마케도니아..

여행 2014.05.05

터키 페르게 - 마나브가트

"한 가지 시를 쓰는 데도 사람은 여러 도시와 사람들과 물건을 봐야 한다...모르는 지방의 길, 뜻하지 않은 만남, 오래전부터 생각한 이별. 그것들이 우리 속에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는 이름없는 것이 된 다음에야 우연히 가장 귀한 시간에 시의 첫 말이 그 한가운데서 생겨난다." 일본의 불문학자 모리 아리마사는 추억이 우리의 속에서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와 구별할 수 없는 이름없는 것이 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그는 많은 경험을 하고, 이를 내면에서 녹여 내야 참다운 글이 나온다고 봤다. 터키의 페르게와 시데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은 아득한 시간의 흐름을 뚫고 날아온 오랜 역사가 몸 안에서 하나로 녹아드는 '물신일체(物神一體)', 합..

여행 2014.05.03

터키 안탈리아 - 줌후리예거리

안탈리아의 볼거리는 사실 줌후리예 거리를 중심으로 양 편에 몰려 있다고 보면 된다. 트램이 지나가는 줌후리예 거리 남쪽은 바로 칼레이치 구 시가지이고, 반대편은 전통 시장인 올드 바자르가 있다. 줌후리예 거리의 중심에는 바로 시계탑이 있다. 시계탑을 중심으로 줌후리예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색색의 우산이 잔뜩 걸려있는 식당 골목이 나오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내려가면 하드리아누스 게이트를 만날 수 있다. 올드 바자르 쪽에는 향신료와 의류, 로쿰, 카펫 상가들이 몰려 있다. 줌후리예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면 공화국 광장, 즉 줌후리예 광장이 나온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이렇게 위, 아래로 오르 내리고 건너다니면서 보면 사실상 안탈리아 관광은 대부분 끝나는 셈이다. 다만 안탈리아의 유명한 고..

여행 201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