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171

베를린

액션물을 좋아하는 액션 키드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은 한국판 '본' 시리즈를 보는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액션이 요란하고, 나쁘게 말하면 할리우드 영화를 닮았다. 북한과 남한, 그리고 아랍계 악당들에게 쫓기는 하정우가 높은 건물을 휙휙 날고, 격투 끝에 달아나는 장면은 영락없이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비단 이 작품 뿐 아니라 '본' 시리즈를 비롯해 다니엘 크레이그가 나오는 007 근작, '미션 임파서블' 등의 액션들이 대부분 잡고 꺾고 비틀며 관절을 공격하는 격투기와 건물과 건물을 건너 뛰며 높은 곳에서 내리 뛰는 야마카시 같은 동작들을 적극 활용한다. 그렇다보니 서로 닮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작품도 최근 액션물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다만 막판 갈대밭 대결 장면은 테렌스 ..

영화 2013.02.09

레미제라블

뮤지컬의 기본은 음악이다. 줄거리와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노래와 음악이 좋아야 끌리기 때문. 그런 점에서 카메론 매킨토시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호불호가 갈린다. 'On My Own'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등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유명한 곡들도 있지만, 전체적인 곡의 앙상블이나 멜로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상대적으로 멜로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이나 같은 빅토르 위고의 또다른 작품을 리카르도 꼬치안떼가 뮤지컬로 만든 '파리의 노트르담'에 비하면 전체적인 곡의 구성이 단조로운 편이다. 하지만 톰 후퍼 감독이 만든 뮤지컬 영화는 1980년 파리 초연을 카메론 매킨토시가 1985년에 개작한 뮤지컬과 또 다르다. 음악의 한계를 영상으로 ..

영화 2012.12.26

26년

조근현 감독의 '26년'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유족들이 모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단죄하는 내용의 영화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실제 역사와 상상을 어떻게 버무렸을 지 궁금했는데, 기대 이하로 실망스럽다. 강풀의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해서 영화 내용이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 지 알 수 없지만 영화의 내용은 너무 치졸하다. 제작진의 역사 인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주인공들의 단죄는 개인의 분노와 복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초반 5.18 항쟁 당시 개개인의 과거 사연을 만화로 처리해 현재 시점의 실사와 차별한 시도는 좋았지만 이후 이야기의 진행은 너무 답답하고 맥이 빠지게 흘러간다. 왜 그리 등장인물들의 사설은 길고 구구절절한 지 일장 연설을 듣는 것 같고, 막상 복수에 나선 행동은 마치 골..

영화 2012.11.30

남영동 1985

타인의 고통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는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은 참 불편한 영화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실제로 겪었던 고문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한마디로 고문의 일대기다. 시종일관 약 2시간 동안 처절하게 울리는 비명 속에 한 남자가 고문 당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영화는 밑도 끝도없이 시작하자마자 고문실로 잡아들인 남자를 족치며 시작한다. 무슨 영화가 줄거리도 없이 무조건 고문으로 때울 수 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네 과거가 실제로 그랬다. 밑도 끝도 없이 멀쩡히 길가던 사람을 잡아다가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빨갱이를 만든 역사가 있다. 그러니 영화..

영화 2012.11.24

광해, 왕이 된 남자

1,000만명의 관객이 들었다하니, 누군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는 그렇게 구를수록 점점 커지는 눈덩이처럼 소문으로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다. 순전히 입소문 만은 아니다. CGV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이름에 '광'자와 '해'자가 들어간 사람을 끌어모으는 등 각종 마케팅까지 더해진데다, 대종상 시상식에서 무려 15개 상을 싹쓸이한 효과도 있다. 그 바람에 욕도 많이 먹지만, 무턱대고 욕만 먹을 영화는 아니다. 나름 그럴듯한 상상력에 적절한 유머를 섞어 재미있게 볼 만 하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재위 기간 중 사라진 15일을 순전히 상상해서 지어낸 이야기는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다. 왕이 암살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바꿔 똑같이 생긴 허수아비를 내..

영화 2012.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