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171

BC 10000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는 공식이 있다. '투모로우' '패트리어트' 등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가족 사랑이다. 자연이 됐든, 사람이 됐든 외부의 위험 때문에 위기에 처한 가족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내용이 기본 바탕이다. 여기에 엄청난 괴수('고질라')를 투입하거나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대자연의 위력('투모로우'), 막강한 군대('패트리어트') 등 위험요인을 키워서 이야기의 규모를 부풀리고 이를 적절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덧칠해 그럴듯한 볼거리를 만들어 낸다. 이번에 개봉한 'BC 10000'도 예외가 아니다. 집채만한 맘모스와 커다란 엄니를 가진 호랑이, 잔혹하기 이를데 없는 부족이 가세해 변방에서 떨고 있는 부족을 위협한다. 잔혹한 부족에게 노예로 ..

영화 2008.03.17

밴티지 포인트

미국 대통령 암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택한 '밴티지 포인트'(Vantage Point, 2008년)는 한 판의 전자오락같은 액션극이다.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시간을 전후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각각의 인물의 관점에서 그린 이야기. 당연히 영화는 범인을 색출해 일망타진하는 내용으로 흐른다. 등장인물마다 서로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퍼즐 조각처럼 이어붙여서 한 편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시도는 신선하다. 자칫하면 산만할 수 있는 구성인데도 불구하고 개연성을 찾아서 연결한 점은 돋보인다. 그러나 이야기가 너무 사건에만 응축돼 있어서 상당히 무미건조하다. 마치 한 편의 수사극 가운데 액션 부분만 떼어낸 느낌이다. 그렇다보니 아무 생각없이 버튼만 누르면 진행되는 전자오락처럼 오로지 범인 잡는데만 골몰하게 된다. ..

영화 2008.03.09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단과 조엘 코엔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극단적 허무로 치닫는다. 등장인물들은 죽기 살기로 돈을 위해 목숨을 걸고 덤비지만 그 누구도 돈을 손에 넣지 못하고 빈털털이로 돌아선다. 그렇기에 돈을 향한 집착이 빚어내는 광기가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무섭고 때로는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한다. '밀러스 크로싱' '파고' '레이디킬러'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등 코엔 형제의 전작들이 대부분 그렇다. 굳이 그 안에서 차이를 둔다면 '레이디 킬러' '위대한 레보스키'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처럼 웃음에 치우친 부류와 '밀러스 크로싱' '파고' 등 스릴러에 무게를 둔 부류가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후자 쪽이다. 이유없는 사이코 패스(하비에르 바르뎀)가 돈다발이 가득 든 가방을 쫓아 연쇄살인을 벌인다..

영화 2008.03.02

추격자

KBS TV 뉴스에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소개하며 '살인의 추억'에 비견될 만한 뛰어난 작품이라고 소개하길래 기대가 컸다. 그러나 결코 '살인의 추억'과 비교할 만큼 걸작은 아니다. 잘 만든 스릴러이지만 완급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유영철 사건처럼 연쇄살인을 벌이는 미치광이 살인범을 뒤쫓는 사내의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무능과 답답함을 꼬집으며 경찰보다 한 사내의 집요함이 오히려 승리를 거두는 구조를 통해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화면과 구성을 통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휘몰아친다. 마치 숨통을 조여오듯 바짝 긴장시키는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제사 한숨이 터지며 온 몸이 펴진다. 그만큼 긴장감은 대단하지만 관객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영화 2008.02.17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1등을 고집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 세상에서 2등은 곧 루저요, 패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2등의 이야기로 1등 못지 않은 꿈과 희망, 감동을 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핸드볼팀은 2등이었지만 위대한 루저였다. 핸드볼이 발붙일 곳 없는 척박한 토양에서 살림과 운동을 함께 하며 신화를 일궈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 신산스런 나날이 영화를 보는 동안 절로 한숨이 나오고 지치게 만든다. 어찌보면 그래서 1등이 더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저렇게까지 해서 얻는게 무엇인가. 영화속에서는 실업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는데도 불구하고 팀이 해체되면서 초등학교 핸드볼팀으로 옮겨간 어느 감독의 입을 빌어 이..

영화 2008.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