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171

오션스13 VS 초속 5cm

서로 다른 2편의 영화가 극장에 내걸렸다. 하나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오션스 13', 다른 하나는 소박한 애니메이션 '초속 5cm'다. 전편인 '오션스 일레븐' '오션스12'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오션스13'은 변함없이 화려한 스타들과 볼거리로 관객을 유혹한다. '오션스' 시리즈의 미덕은 화려함 그 자체인 라스베이거스를 볼 수 있다는 점.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사기를 당한 친구를 대신해 복수의 칼을 품고 모인 멤버들은 라스베이거스에 새로 개장하는 최고의 호텔인 더 뱅크의 파산을 노린다. 이를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여기에 13번째 멤버로 전작에서 오션 일당에게 호되게 당한 앤디 가르시아가 합류한다. 내 적의 적은 동지라는 개념이 성립된 것. 그러나 아이디어의 참신..

영화 2007.07.02

블랙북

폴 바호벤은 집요한 사람들의 욕망을 해부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쇼걸' '원초적 본능' '할로우맨' 등 그가 만든 일련의 작품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성공과 욕망을 위해 질주하다 우울하게 파멸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블랙북'(Black Book, 2006년)도 마찬가지. 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눈을 피해 네델란드에 숨어사는 유대인 여성이 겪는 우울한 삶의 드라마다. 살아남아 복수하기 위해 여인은 적군의 애인이 되고 스파이짓을 한다. 그 와중에 얽히고 설킨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영화의 결말을 예측하기 힘들만큼 뒤집어 놓는다. 여인의 운명이 하도 박복하기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이 모든 내용이 전부 실화라니 더욱 답답하다. 추리소설처럼 이어지는 반전의 반전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눈을..

영화 2007.04.28

300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은 피로 쓴 서사시다. BC 480년, 300명의 스파르타 결사대가 수십만명의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고 장렬히 전사한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영화는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붉은 색으로 덮힌다. 스파르타 병사들의 장미꽃잎처럼 붉은 망토, 칼부림이 일때마다 방울져 사방으로 흩어지는 적포도주같은 피 등 온통 붉은 색 일색이다. 강렬한 색감만큼 모든 장면이 광고 사진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원작 만화가 '씬시티'로 유명한 프랭크 밀러의 작품이기 때문. 비디오 게임같은 '새벽의 저주'로 액션공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잭 스나이더 감독답게 이 작품 역시 만화책을 그대로 옮긴 듯한 화면으로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DL..

영화 2007.03.23

그 해 여름 VS 국경의 남쪽

이데올로기는 참으로 무섭다. 휴지에 스며드는 물처럼 소리없이 파고들어 사람을, 세상을 같은 색깔로 물들인다. 특히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을 바꿔놓는 힘을 지녔기에 아찔한 공포를 느낀다. '그 해 여름'과 '국경의 남쪽'은 바로 극한의 좌우 이념대립으로 분쟁의 아픔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만 나올 수 있는 영화다. 두 작품 모두 역사의 질곡으로 개인의 삶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풀어져버리는 공포스런 이야기를 담았다. 조근식 감독의 '그 해 여름'은 과거 1980년대 한창 일었던 학생운동을 떠올리게 만든다. 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당시 좌익분자로 몰리면 한 순간에 삶이 고통으로 변했다. 농활을 떠난 대학생 석영(이병헌)은 시골 처녀 정인(수애)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정인의 아버지는 월북한 좌익..

영화 2007.03.03

1번가의 기적

윤제균 감독의 영화가 많이 달라졌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웃음 뒤에 감춰진 쓰라린 눈물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깊이가 생겼다. '1번가의 기적'(2007년)은 '색즉시공' '두사부일체' '낭만자객' 등 강도높은 웃음에 주안점을 두었던 그의 전작들과 달리 웃음과 더불어 진한 감동을 주는 영화다. 재개발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철거용역 깡패의 애환이 주된 이야기. 윤 감독은 3류 깡패, 여자 복서, 당돌한 어린 남매 등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의 윤기를 더 했다. 양아치 연기의 달인 임창정의 연기는 이번 작품에서 더 할 수 없이 훌륭했고 복서를 연기한 하지원의 연기도 그럴 듯 했다. 영상도 훌륭하다. 과거와 현재를 빠르게 넘나드는 교차 편집을 통해 이야기를 속도감있게 밀고 나가는 윤 감독의 연..

영화 2007.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