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난데없이 영화 '미션'(The Mission, 1986년)의 음악이 TV를 뜨겁게 달구었다.
오락프로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이 오랜 고생 끝에 부른 노래가 바로 '미션'의 삽입곡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였다.
영화음악을 맡았던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이 곡의 원제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다.
남미 원주민들을 선교하기 위해 정글로 들어간 가브리엘 신부가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오보에를 꺼내 부는 장면에 나온 곡이다.
언뜻 음악만 들으면 이 영화는 더 할 수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작품같다.
과연 그럴까.
이 작품은 인류가 종교에 기대는 만큼, 종교가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 지 묻고 있다.
과연 교리에 순응해 사랑과 용서를 외치며 묵묵히 희생하는 것이 맞는 가, 아니면 칼을 뽑아들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직접 구원하는 것이 옳은가.
롤랑 조페 감독은 이를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가브리엘 신부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멘도자라는 인물을 통해 대신 표현한다.
두 사람은 탐욕에 눈이 멀어 식민지의 원주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백인에 맞서 사랑과 저항이라는 각기 다른 무기를 선택한다.
롤랑 조페가 던진 이 같은 물음과 선택은 현실에서 그대로 되풀이됐다.
1968년에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메데인에서 개최된 라틴아메리카의 천주교 주교단 회의에서 중남미 교회는 해방 신학을 기본 방향으로 결정한다.
소위 메데인 회의에서 결정된 해방신학은 페루 출신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가 주창했다.
천주교도 계급 투쟁 의식에 입각해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것이 해방 신학의 요체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구티에레즈 신부의 '해방신학의 올바른 이해'나 한마당에서 출간한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해방신학 입문'을 보면 하느님이 민중의 편에 서는 이유가 민중이 도덕적이어서가 아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해방 신학의 하느님은 한 마리 어린 양을 돌보는 약자를 위한 신학이다.
암살당한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도 여기 동참해 "구원은 죽어서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복음을 전파했다.
그런 점에서 해방 신학은 성당을 벗어나 직접 총을 든 행동하는 신학이었다.
실제로 콜롬비아의 카밀로 토레스 신부는 민중을 위해 총을 들고 게릴라 전을 펼치다가 산 속에서 죽어갔다.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이론이 접목된 해방 신학은 종교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로마 교황청은 오랜 세월 해방 신학을 인정하지 않았고, 여기 반발한 보프 신부같은 해방신학자는 사제직을 내던지기도 했다.
해방 신학이 국내에 들어와 민중 신학으로 바뀌었고 1970, 80년대 암울했던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민중이 기댈 수 있는 힘이 돼주었다.
그래서 80년대 당시에는 해방 신학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 금서였다.
영화 '미션'은 해방 신학의 모태같은 작품이다.
1750년 포르투갈이 식민지인 파라과이에서 과라니족을 학살한 실화를 다뤘다.
백인의 탐욕, 백인들에게만 구원의 하느님으로 나선 종교적 편향에 맞서 분연히 총칼을 들고 일어나 원주민들과 함께 죽어간 예수교 신학자들의 모습이 곧 해방 신학이다.
어찌보면 천주교에서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민중의 무기가 된 하느님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종교의 자세가 무엇인 지 물은 수작이다.
1080p 풀HD의 2.40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지글거림이 보이고 원경의 해상도는 떨어진다.
하지만 25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그런대로 괜찮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저음이 묵직해 중량감이 있으며 서라운드 효과도 적절하다.
부록으로 감독의 음성해설과 제작과정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참고로, 블루레이 타이틀에는 영화를 고스란히 수록한 DVD 타이틀도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근처와 콜롬비아의 막달레나 강에서 찍었다. 발로 쏘는 불화살은 실제 역사에는 없는 무기다. 폭포에서 카누가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장면은 배우들이 다리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따로 찍은 뒤 폭포 영상과 합쳤다. 이 작품은 파라과이 원주민인 과라니족의 학살을 다룬 실화다. 제작진은 콜롬비아 남서부 초코지역 인근 사모아강의 열대 우림에 살고 있는 와나나족을 찾아내 과라니족 역할을 연기하도록 설득했다. 제작 당시 콜롬비아군이 현장에 함께 있었다. 베르너 헤어조그 감독의 '피츠카랄도' 촬영 당시 원주민이 죽었기 때문에 이 같은 사고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식민지 시절 남미에서 제수이트파, 즉 예수교 소속의 성당은 원주민들의 피난처였다. 촬영 당시에서 콜롬비아에는 원주민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다. 제작진이 찍은 기록필름을 보면 촬영 현장에서 먼저 온 원주민들을 오래도록 제껴놓고 나중에 온 콜롬비아인들에게 먼저 밥을 주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은은한 조명과 여백을 잘 살린 아름다운 영상이 인상적이다. 촬영은 크리스 멘지스가 담당. 와나나족은 촬영 도중 계약 날짜 때문에 파업을 하기도 했다. 제작진은 추가 수당을 주고 이를 해결했다. 수면 높이에 맞춘 카메라 앵글이 인상적이다.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롤랑 조페 감독은 "원주민들에게 일어난 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영화가 사회에 공헌하기를 기대해 수익의 일부를 와나나족 공동체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해방 신학 이론을 정립한 구티에레즈 신부는 1928년에 페루에서 태어나 산마르코스 의대를 다녔고 신부가 되기 위해 카톨릭신학교를 나왔다. 그는 해방 신학이론으로 85년 프랑스 리옹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방신학의 또다른 이론가였던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 역시 영화 속 신부들처럼 제수이트파, 예수교였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촬영상, 골든글로브 음악상 등을 받았다. 가브리엘 신부를 연기한 제레미 아이언스와 필딩 신부 역의 리암 니슨, 그리고 머리가 흰 신부 역할은 실제 예수교의 다니엘 배리건 신부가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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