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남자 속옷 48

아수라 (블루레이)

사토 케이이치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수라'(2012년)는 독특한 작품이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일본 중세시대, 먹을거리가 제대로 없어 모두가 굶주리는 상황에서 여덟살배기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는 얘기다. 내용 자체도 충격적이고 아이가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그림 또한 섬뜩하다. 원작은 1970년대 일본 소년만화잡지에 연재됐던 죠지 아키야마의 만화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1467년부터 11년간 이어진 오닌의 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쇼군의 후계자를 둘러싸고 대립한 하타케야마와 시바 집안은 전쟁을 벌여 수도였던 교토를 초토화시킨다. 모든 것이 파괴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린다. 이 전쟁 때문에 쇼군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져,..

비포 미드나잇 (블루레이)

제시와 셀린느가 돌아 왔다. '비포 선셋' 이후 9년, '비포 선라이즈' (http://wolfpack.tistory.com/entry/비포-선라이즈-비포-선셋)이후 18년 만이다. 세월의 두께는 두 사람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호리호리하고 가냘펐던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주름지고 배가 나왔으며, 결정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쌍둥이 자매가 태어났다. 그렇게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년)은 두 연인의 속절없는 세월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아니 영화 속 연인은 좀 더 현실적으로 돌아 왔다. 1편에서 사랑을 싹 틔우고, 2편에서 안타깝게 사랑을 보낸 그들은 3편에서 세월따라 변해버린 사랑을 이야기한다. 어느덧 아이들이 뛰노는 중년이 ..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블루레이)

거인은 성서에서부터 정복욕을 자극하는 사악한 존재로 나온다. 다윗의 돌팔매에 쓰러진 골리앗부터 그리스 신화 속 율리우스가 상대한 외눈박이 거인까지 그들은 모두 정의롭고 용맹한 작은 인간들을 위한 제물이었다. 그만큼 거인들의 이야기는 미지의 커다란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불굴의 용기로 끝없이 도전할 것을 자극하는 소재로 즐겨 쓰였다. 영국 민화인 '잭과 콩나무'도 마찬가지. 이를 토대로 만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Jack the Giant Slayer, 2013년)는 컴퓨터로 만든 만화같은 작품이다. 하늘로 치솟은 콩나무 때문에 거인들이 땅으로 내려와 인간을 잡아먹는 재앙이 벌어지고, 이를 잭이 막아내는 내용. 뻔한 줄거리를 메꾸는 것은 결국 무지막지한 거인들과 맞서 싸우는 인..

사랑과 영혼 (블루레이)

1965년에 발표된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노래 'Unchained Melody'를 전세계적으로 다시 크게 히트시킨 제리 주커 감독의 '사랑과 영혼'(Ghost, 1990년)의 플롯은 단순하다. 여자를 너무도 사랑했던 남자가 죽어서도 여자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주는 이야기로, 마치 '금오신화'나 '양생'의 설화와 비슷하다. 단순한 이야기를 엄청난 히트작으로 만든 비결은 음악과 맞아 떨어지는 기가 막힌 영상과 개성이 살아있는 캐릭터의 힘이다. 특히 압권은 라이처스브라더스가 부른 'Unchained Melody'에 맞춰 주인공 남녀가 도자기를 빚는 장면. 언뜻보면 웃기고 황당할 것 같지만 느린 템포의 음악에 맞춰 서서히 물레가 돌아가면서 두 남녀가 벌이는 몸짓이 어지간한 정사씬 보다도 훨씬 더 에로틱하다. ..

빌리 엘리어트 (블루레이)

석탄 가루가 풀풀 날리는 탄광촌,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는 광부들이 대부분인 그 곳에서 남자들의 위안거리는 축구와 권투다. 이런 곳에서 발레를 배우겠다고 하면 단연 웃음거리가 되거나 게이로 의심을 받는다. 11세 소년 빌리 엘리어트, 그는 그런 편견을 깨고 과감히 발레리노에 도전을 한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2000년)는 척박한 환경을 뚫고 꿈을 위해 도전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우군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빌리의 도전은 눈물겹고 코믹하다. 달드리 감독은 빌리의 도전을 잔잔한 에피소드와 함께 묘사해 재미와 감동을 준다. 권투를 배우던 소년이 갑자기 춤을 배우니, 서툴고 엉성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진솔하면서도 코믹하게 묘사했다. 더불어 1970, 80년대 크게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