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남자 속옷 48

체리쉬

이 영화, 특이하다. 우선 소재가 독특하고 내용도 별나다. 핀 테일러 감독의 '체리쉬'(Cherish, 2002년)는 17미터의 사랑을 다뤘다. 17미터란 전자발찌의 감응거리다. 우리는 전자발찌하면 성폭력범이 우선 떠오르겠지만 미국의 전자발찌 제도는 좀 다르다. 중죄인이 아닌 경우 재판을 받을 때까지 전자발찌를 채워 행동을 제한한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감지기와 일정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내용은 음주운전으로 경찰관을 사망케 했다는 누명을 쓰고 전자발찌를 차게 된 여성의 이야기다. 시작은 불운했지만 전자발찌 덕에 짜릿한 사랑의 경험도 하게 되고, 범인 색출에도 나선다. 일단 전자발찌를 다룬 영화가 흔치 않다보니 소재가..

뉴욕스토리

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우디 앨런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세 감독이 함께 모여 영화를 만들었다. 바로 '뉴욕스토리'(New York Stories, 1989년)다. 이 작품은 세 감독이 각각 따로 만든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기본적으로 맨하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세 사람의 개성이 다르다 보니 각각의 영화가 모두 독특하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Life Lessons'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저명한 화가가 동거하는 여인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얻는 얘기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감독답게 프로콜 하럼의 'White Shade of Pale' 'Conquistador'부터 크림의 'Politiclan', 레이 찰스의 'The Right Time'..

배가본드 - 사무라이 3 간류도의 결투

이나가키 히로시 감독이 만든 '사무라이' 3부작 가운데 마지막 편이 '간류도의 결투'(1956년)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오랜 수련을 끝내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일을 할 때 당대 최고의 무사라는 사사키 코지로의 도전을 받고 간류도에서 최후의 대결을 펼치는 내용이다. 무사시가 소소한 싸움을 벌이고 두 여인의 애정공세에 괴로워하는 기본적인 설정은 전작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전작들보다 무사시의 언행이 진중해져서 수련의 깊이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히로시 감독의 사무라이 시리즈는 액션이 화려하지 않다는 점이 특징. 상대방을 노려보며 대치를 하던 중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검과 검이 충돌하는 결투의 과정은 그 자체로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특히 막상 싸움보다 직전의 대치 ..

나비효과

1961년 미국 MIT의 기상학 교수였던 에드워드 로렌츠는 지구의 대기 역학을 연구하다가 '나비효과'라는 용어를 처음 창안했다. 나비효과는 아마존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중국에서는 태풍이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나비효과의 복잡 다단한 인과관계가 혼돈이론으로 발전했다. 에릭 브레스와 J 맥키 그루버가 공동 감독한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 2004년)는 이를 기발하게 접목한 영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꾸는 내용이다. 태풍을 일으킨 나비의 날개짓처럼 한 청년의 말 한마디와 행동 등 순간적 선택이 훗날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성공은 대본의 힘이다. 두 감독이 6년 동안 다듬었..

스캐너 다클리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스캐너 다클리'(A Scanner Darkly, 2006년)는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이다. 즉, 실사로 촬영한 영상 위에 애니메이터들이 그림을 덧입히는 방법으로 제작됐다. 그만큼 움직임이 실사 영화처럼 자연스러운 점이 장점이지만, 실사 영화를 찍어서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을 거쳐야 하므로 두 번의 손이 가는 만큼 오래 걸린다. 감독의 전작인 '웨이킹 라이프'가 같은 방법으로 제작됐는데, 그때 재미있게 봐서 이 작품도 보게 됐다. 원작은 유명한 SF소설가인 필립 K 딕의 동명소설. 근 미래의 사회에서 사람의 두뇌를 파괴하는 마약을 쫓는 수사관과 마약 중독자들의 이야기다. 마약 중독 상태에서 환각을 보는 상황을 아주 실감 나게 묘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작자인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