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남자 속옷 48

카우보이 비밥 박스세트 (블루레이)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저패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Cowboy Bebop, 1998년)은 말이 필요없는 명작이다. 총 26회로 구성된 이 작품은 먼 미래 우주를 배경으로 현상범을 쫓는 사냥꾼들의 이야기다. 작품에 등장하는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카우보이들은 SF물에 서부극을 섞은 듯한 퓨전 스타일의 작품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즉, 배경은 미래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감성과 총기 등은 현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1970, 80년대 아날로그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소룡의 절권도를 구사하는 주인공부터 '영웅본색' '첩혈쌍웅'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액션 장면까지 감성은 지극히 올드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SF 배경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연출력을 발휘한 와타나베..

드럼라인

찰스 스톤 3세 감독의 '드럼라인'(Drumline, 2002년)은 고교 시절 밴드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아이들이 가장 기피하던 특별활동반이 밴드부였다. 군대같은 조직문화 속에 구타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군대처럼 여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다보니 유독 군기를 세게 잡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미국이라고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대학 밴드부 역시 혹독한 얼차려로 부원들의 혼을 빼놓는다. 팀웍이 중요한 밴드부의 특성상 아무리 잘난 천재라도 독불 장군식 독주는 용납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영화는 북치는 재주를 타고 난 주인공이 대학 밴드부에서 조직 문화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밴드부들의 요란한 공연을 다룬 ..

햇필드와 맥코이 (블루레이)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 햇필드와 맥코이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남북전쟁 및 벌목 관련 이권을 둘러싸고 반목한 두 집안이 1880년부터 1920년까지 몇 십년에 걸쳐 싸운 이야기로, 어찌나 싸움이 심했던 지 두 집 안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물론이고 영어사전에도 올라 있다. 이를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 주연을 맡고 케빈 레이놀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3부작 TV 미니시리즈로 만든 작품이 '햇필드 앤 맥코이'(Hatfields & McCoys, 2012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히스토리채널에서 지난해 방영해 2012년 케이블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닐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3부작은 1,430만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만큼 실제 사건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이 들..

나에게 오라

김영빈 감독의 영화 '나에게 오라'(1996년)는 한국적 풍취를 제대로 살린 빼어난 토속 느와르다. 예전에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 DVD나 블루레이가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최근 UEK에서 DVD로 출시됐다. 소설가 송기원이 1994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두 청년의 방황과 꿈을 다뤘다. 외양은 고교 친구들의 성장 드라마이지만, 내면에는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1970년대 개발 붐을 타고 벌어지는 잇권 다툼 속에 희생되는 개인 등 시대적 아픔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높게 평가받을 만한 점은 뛰어난 사실성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초가집과 어수선한 시골 장터 풍경, 대보름에 벌어지는 횃불 싸움 등 여타..

클린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클린'(Clean, 2004년)은 마약에 중독된 여인이 갱생의 길을 걷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주연은 감독의 부인이었던 장만옥이 맡았다. 주인공 여인은 록 가수인 남편과 함께 마약에 빠져 헤매던 중 남편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면서 새로운 삶을 맞게 된다. 뒤늦게 자신의 삶도 돌아보고 버리다시피 한 아들도 생각한다. 결국 그가 있어야 할 자리인 엄마로, 여인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 삶을 사는 것 뿐이다. 제목인 클린은 결국 여인의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 쉬운가. 어느 한 순간 지우개로 지우듯 깨끗이 지우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아사야스 감독은 삶의 힘든 변곡점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장만옥은 변화가 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