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5/03 9

위플래쉬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Whiplash, 2014년)는 선혈이 낭자한 음악 영화다. 마치 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 '록키'(http://wolfpack.tistory.com/entry/록키-DE)를 연상케 한다. 무명의 음악가가 피나는 노력을 통해 정상급 밴드의 드러머 자리를 꿰차는 과정은 3류 건달 록키 발보아가 세계 헤비급 챔피언과 한 판승을 벌이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최고의 자리는 워낙 노리는 사람이 많아 결코 만만치 않다. 무수한 도전자들과 경쟁을 벌여 살아남기 위해 주인공은 손바닥 살이 갈라져 터지도록 쉼 없이 드럼을 두드린다. 스네어와 탐탐 위에는 만만찮은 맞수들이 치열한 주먹 다짐을 한 것처럼 여기저기 핏방울이 얼룩져 있다. 영화의 단선적인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놓치 않은..

영화 2015.03.14

버드맨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몰아서 받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Birdman, 2014년)은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한 영화다. 주인공이 겪는 내적 갈등과 혼란을 쉽게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우 리건은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처럼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든 블록버스터 '버드맨'으로 한때 잘나갔던 할리우드 배우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더 이상 버드맨으로 설 수 없게 된 그는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서 제 2의 인생에 도전한다. 리건은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싶어하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버드맨의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감독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영상으로 주인공의 고뇌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문제는 그의 고뇌가 ..

영화 2015.03.11

관계의 종말

폭력 미학의 거장 샘 페킨파 감독의 작품들은 가슴 떨리는 설레임이 있다. 걸작 '관계의 종말'(Pat Garrett & Billy The Kid, 1973년)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아는 서부극을 눈물 나도록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서정으로 그려낸 걸작이다. 다만 국내 제목을 누가 이렇게 바꿔 놓았는 지 모르겠지만, 황당한 제목이 작품의 진가를 가려 버렸다. 내용은 1850~80년대 실존했던 미국의 전설적인 무법자 빌리 더 키드와 그를 사살한 보안관 팻 개럿의 숙명적인 대결을 다뤘다. 언제나 그렇듯 페킨파 감독은 죽음의 순간을 특유의 슬로 모션으로 다뤘다. 숨 막히는 긴장의 순간 폭발하듯 총격전이 벌어지고, 선명한 붉은 피를 뿌리며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느리게 묘사한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블루레이)

포르투갈의 리스본은 워낙 멀어서 쉽게 갈 엄두가 나지 않지만,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다. 직접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영상으로나마 보고 싶은 생각에 봤던 영화가 빌 어거스트 감독의 '리스본행 야간열차'(Night Train to Lisbon, 2013년)다.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파스칼 메르시어의 유명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어느날 우연히 자살의 위기에서 구해 낸 여인이 홀연이 남기고 사라진 책 한 권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주인공을 맡은 제레미 아이언스는 이 책을 들고 리스본까지 찾아가 저자의 흔적을 쫓으면서 감춰진 이야기를 알게 된다. 영화의 매력은 아무래도 간간히 나오는 포르투갈 풍경이다. 로드무비처럼 본격적으로 리스본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역사와 현재의 이야기를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