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7/09 12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블루레이)

1980년대 학창 시절에 즐겨 보던 만화책이 있다. 성심도서라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에서 낸 '신 루팡 3세'라는 시리즈 만화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해적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악한 인쇄의 이 만화는 일본 만화가 몽키 펀치가 그린 '루팡 3세'를 번역해 그대로 출간한 시리즈였다. 각 권마다 여러 개의 단편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만화책이 인기였던 것은 꽤 야하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루팡 3세는 여자를 엄청 밝히는 호색한이어서 온갖 여자들과 가리지 않고 잠자리를 갖는다. 거기에 난폭하고 잔인한 액션, 말이 되지 않지만 황당하고 기발한 도주와 절도술,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유머까지 만화책이 줄 수 있는 온갖 재미를 선사했다. 다만 1960, 70년대 소설책처럼 세로쓰기여서 읽기 불편..

비커밍 제인(블루레이)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리티' 등의 작품을 쓴 영국의 여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잘 다루기로 유명하다. 단순히 이상적인 로맨스가 아닌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잘 묘사해 국내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제인 오스틴은 42세에 세상을 뜨기까지 길지 않은 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물론 독신이라고 해서 연애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연애 이야기를 잘 쓴 소설가 치고는 의외다. 과연 제인 오스틴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줄리언 재롤드 감독의 '비커밍 제인'(Becoming Jane, 2007년)은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다. 존 스펜스가 2003년에 쓴 소설 '제인 오스틴'을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사실과 작가의..

피렌체의 베키오다리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베키오 다리는 두오모와 함께 피렌체의 상징 중 하나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돼 '오래된 다리'라는 뜻의 폰테 베키오라는 이름이 붙은 이 다리는 독특하다.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 강 위에 놓은 10개 다리 중에 유일하게 다리 위에 상점이 있다. 어찌보면 전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의 다리이기도 하다. [피렌체의 상징 중 하나인 폰테 베키오.] 다리 위에 집이나 상점을 지은 도시는 피렌체 뿐만이 아니다. 과거 파리의 센 강 위에 놓은 다리에도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으나 퐁네프 다리 이후 그런 풍경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베키오 다리는 지금도 다리 위에 사람이 드나드는 상점이 있다. 다리 양편으로 금은방들이 들어차 오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다리 위에 ..

여행 2017.09.09

블루 재스민(블루레이)

우울한 재스민. 제목처럼 '블루 재스민'(Blue Jasmine, 2013년)의 주인공 재스민은 우울하다. 그의 우울은 극적인 신분 변화에서 찾아왔다. 뉴욕 상류사회에서 명품으로 휘감고 호화롭게 살던 재스민은 어느 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이를 빌미로 급기야 헤어진다. 졸지에 남편의 집을 뛰쳐나온 재스민은 여동생에게 의지하기 위해 뉴욕의 부촌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동네로 옮겨간다. 그때부터 재스민의 생활은 생존이 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급기야 재스민은 우울증 약까지 먹게 된다. 가진 자들에게 삶의 변화가 가져오는 충격이 얼마나 큰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그러면서 우디 앨런은 특유의 유머를 잃..

베스트 오퍼(블루레이)

주세페 베르나토레는 이탈리아의 서정을 영화에 잘 녹여내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시네마 천국'이나 '말레나'를 보면 영화 속 시대를 살아온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면 공감갈 만한 내용들을 서정적으로 잘 녹여 냈다. 그러면서도 그런 정서를 다른 지역 사람들도 쉽게 호응할 만한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 높이 살 만 하다. 그래서 가장 이탈리아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현대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으로 꼽을 만 하다. 아마 이탈리아 정부도 그 점을 높이 사서 그에게 기사 칭호를 내린게 아닐까 싶다. 그런 그가 만든 '베스트 오퍼'(La migliore offerta, The Best Offer, 2013년)는 좀 독특한 영화다. '시네마 천국'이나 '말레나'처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지도 않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