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5/05 8

티악 LP-R550USB

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예전 1970, 80년대만 해도 동네에 작은 음반점이 꽤 있었다. 이런 동네 음반점은 컴팩트디스크(CD)가 나오기 전이어서 카세트테이프나 레코드판(LP)을 팔았다. 그런데 LP나 카세트테이프보다 더 많이 팔린 게 있었다. 일종의 짜깁기 테이프다. 라디오를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곡목을 쭉 적어서 갖다 주면, 음반점 주인이 해당 LP를 찾아서 이것 저것 여러 곡을 원하는 대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주고 돈을 받았다. 소위 듣고 싶은 곡들만 모아 놓은 나만의 편집 테이프인 셈이다. 듣고 싶은 곡은 많은데 모든 음반을 구입하기 힘든 경우 이런 식으로 녹음 테이프를 구입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저작권 개념이 희박하다보니 음반점에서 버젓이 이런 방..

메모장 2015.05.10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블루레이)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 2012년)은 흔치 않은 사랑을 다뤘다. 속된 말로 '또라이'라고 표현하는 미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다. 그렇다고 광인처럼 난폭한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신경쇠약 같은 조울증이나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야기다. 이들은 겉보기에 멀쩡하다. 다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기피하는 것들에 과도하게 반응해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정신병원이나 약물치료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주변의 관심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주위 사람들이 따뜻하게 받아주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러셀 감독은 이들이 사랑을 통해 변하는 과정을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따..

차이나타운

한준희 감독의 데뷔작 '차이나타운'(2015년)은 아주 '쎈' 영화다. 사방팔방 피가 튀는 사채업자들의 장기매매를 다룬 잔인무도한 이야기는 이보다 더한 막장이 없다. 장기매매는 '아저씨'나 '공모자들' 등 익히 우리 영화에 흔하게 등장했던 소재이지만, 이 영화는 그 과정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섬뜩하게 그렸다. 특히 그 중심에 여자들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범죄 영화에서 여자들은 주로 희생자 아니면 종범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 마치 여왕벌처럼 악의 중심에 서 있다. 무엇보다 관록의 여왕벌과 떠오르는 여왕벌의 녹록찮은 대결을 그럴 듯 하게 묘사한 배우들의 힘이 컸다. 얼굴 가득 주근깨 분장을 하고 짧게 자른 머리를 희끗희끗하게 염색한 김혜수는 마치 '대부'의 말론 브란도처럼 이전 영화들과 또다..

영화 2015.05.02